통일신라 정치 (676~935)
통일신라는 삼국 통일 후 신문왕 (681~692)이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시기에 안정기를 맞아요. 신문왕의 개혁: ① 김흠돌의 난 진압 (귀족 숙청), ② 9주 5소경 설치 (전국 지방 행정 정비), ③ 9서당·10정 설치 (군사 조직), ④ 국학 설립 (유학 교육), ⑤ 녹읍 폐지·관료전 지급 (귀족 경제력 약화). 9주 5소경은 시험 단골 출제예요. 8세기 경덕왕 때 녹읍 부활로 귀족 권력 강화 → 9세기 호족 등장 → 후삼국 분열 (900년 견훤 후백제·901년 궁예 후고구려)로 이어집니다.
통일신라 사회·경제·문화
통일신라 경제: 정전 (성덕왕·722년) 지급 = 백성에게 토지를 주어 국가 재정 안정. 사회: 골품제 유지 + 6두품의 사회 진출 활발 (최치원·설총·강수). 문화: ① 불교 (원효·의상·혜초)·교종·선종, ② 유학 (국학·독서삼품과·강수·설총·최치원), ③ 예술 (석굴암·불국사·다보탑·석가탑·성덕대왕신종·무구정광대다라니경 =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). 통일신라 문화는 한국 고대 문화의 정점이에요. 1:1 과외에서 문화재 시각 학습이 효율적입니다.
발해 (698~926)
발해는 698년 대조영 (고왕)이 만주 동모산에서 건국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줄기예요. 핵심 왕: ① 무왕 (영토 확장·당과 대결·일본 외교), ② 문왕 (당 문물 수용·중경→상경 천도·국호 "발해"·황상 칭호), ③ 선왕 (9세기 전성기·5경 15부 62주 정비·"해동성국"). 발해의 고구려 계승 의식: ① 일본에 보낸 국서 ("고려국왕"·"고구려 옛 영역"), ②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 유민, ③ 온돌·기와·고분 양식이 고구려 풍. 시험에서 발해의 정체성 (당 문화 영향 + 고구려 계승)이 자주 출제돼요.
남북국 쇠퇴·후삼국 (9세기 말~10세기 초)
9세기 말 통일신라는 진성여왕 시기 (887~897) 사회 혼란이 극심해졌어요.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·녹읍 부활·농민 반란 (원종·애노의 난·886년)으로 중앙 권력 약화 → 호족 등장 (지방 세력가). 호족은 6두품·선종 승려와 결합해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성장. 결국 900년 견훤 후백제 건국, 901년 궁예 후고구려 (901년→904년 마진→911년 태봉) 건국, 935년 신라 자진 항복. 발해는 926년 거란 야율아보기에 의해 멸망. 발해 유민이 고려에 흡수되어 민족 통합 토대가 마련됩니다.